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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ete, Ranket, Rancket

  Rankete 혹은 Racket는 넓은 폭과 짧은 길이의 원통형나무 몸통에 많은 평행의 구멍을 가진 르네상스시대 목관 복황 취주악기를 표기하였고 16‘옥타브에서 매우 작게 울리는 악기이다. 오르간음색으로 Rankete는 1596년 David Beck의 Gröningen Schlosskirche 오르간에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중부독일 오르간제작자 Esaias Compenius가 1610년 Frederiksborg의 Schlosskirche오르간에 Rankete 16’를 이 음색을 연이어 사용하였다. 1750년 이후 이 음색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매우 드물게 이 음색을 때때로 사용하였다. 오르간복고운동으로 이 음색은 다시 선택되어진다.

 

  이 음색은 대부분 16‘음역(매우 드물게 8’음역)에서 Manual에 배치되는 떨판형파이프로 파이 프 다리와 같은 지름의 원통형 막힌식 울림통의 음색이다. 이 음색의 소리와 바람의 유출구로 몸통의 하단부에 있는 세 개의 작은 구멍이 기여한다.

 

 

Rauschflöte, Russflöte

1. 단열의 Rauschflöte

2. 여러 열의 Rauschflöte,

 

 

Rauschpfeife, Rausch-, Rus-, Rußpfeiffen, -pfiffen, -pipe

  오케스트라 악기인 Rauschpfeife는 겹리드를 가진 오보에 종류의 악기이다. 이 악기는 1550년 이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오르간의 음색이름으로 계속 이어갔다. 원래의 배열은 4'+ 2 2/3'+ 2' + 1 1/3'에서 곧 5 1/3'+ 4', 2 2/3'+ 2' 로 되었다. 오늘날 Rausch- pfeife는 MIxtur 종류의 음색으로 여겨지고 1650년 이후 주로 3열(4', 2 2/3', 2'), 간혹 페달에 4열(5 1/3', 4', 2 2/3', 2' 아니면 2 2/3', 2', 1 1/3', 1')로 구성한다.

  18세기 남독에서 많은 열(13열 혹은 10열)의 Rauschpfeife를 시도했다. 아마 저음열은 떨 판형으로(16', 8', 4'),고음열은 입술형 파이프로 배치한 듯싶다.

 

1. 떨판형파이프 Rauschpfeiffe

Rauschpfeife라는 이름의 오르간음색은 16세기 초 독일의 Rhein강변 지역에서 짧은 울림통을 가진 떨판형파이프로 제작되었다. 1507년 Zürich 대성당 오르간에 Rußpfeiffen을 얻는다. Köln의 제작자 Hans Suys도 1507년 Straßburg의 대성당에 같은 음색을 제작한다.

이러한 원통형 짧은 울림통의 Rauschpfeiffe는 수십 년 후 사용되지 않게 된다.

 

2. 입술형파이프 5도(Quinte)와 옥타브(Oktav) 구성의 Rauschpfeiffe

  한편 중부독일과 북독일 지역에서는 16세기 초 입술형파이프의 Rauschpfeife가 나타난다. Caspar Bubeling은 1519년 Lüneburg의 St. Lamberti에 입술형파이프의 Ruspipe음색을 제작하였다. 당시의 Rauschpfeife는 5도(Quinte)음역의 음색인 듯하다. 많은 문헌을 통해 당시에는 Rauschpfeife와 Quinte는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Naumburger Dom에 Esaias Beck는 1568년 "Quint oder Rauschpfeiffen"이라는 음색을 제작하였다.

반면 2열의 Rauschpfeife도 있었다. 1598년 Antonius Wilde가 Lüdingworth의 St. Jacobi와 맺은 오르간건립계약서에는 "Rueßpipe 2 Pipen"이라는 음색이 있는데 이는 2 2/3‘ 과 2’로 이루어진 것이다.

17세기 초에는 여러 열로 구성된 강한 Rauschpfeiffe가 등장한다. 1626년 Gottfried Fritzsche는 Braunschweig의 St. Ulrici오르간 Pedal에 Rauschpfeiffe 4f를 계획하였다.

  Arp Schnitger와 그의 제자들은 1680년 이후 3열의 Rauschpfeiffe를 자주 제작하였다. Schnitger는 반복구성의 Rauschpfeiffe도 제작하였다(1711년 Pellworm의 Altenkirche. C건반은 2/3' + 1/2', c건반부터 1 1/3‘ + 1’, c1건반부터는 2 2/3‘ + 2’). 1800년 이후 Rauschpfeiffe는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된다. 1880년 이후 중부 및 북독일에서 2열의 Rauschpfeiffe가 다시 사용되어진다. 오르간복고운동으로 1925년 이후 Rauschpfeife는 Pedal의 Mixtur대용이나 Pedalmixtur와 함께 빈번히 배치된다. 대부분 3-5열로 배치되며 5 1/3‘나 2 2/3’를 기본(토대)로 구성한다.

 

3. 입술형파이프 3도(Terz)와 7도(Septime)구성의 Rauschpfeiffe

  Johann Wilhelm Gloger는 1731-32년 Bockenem/Harz의 St. Pancratius에 3도(3 1/5‘)가 들어간 3열의 Rauschpfeife를 제작하였다. 3도(Terz)가 들어간 Rauschpfeife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 Pedal에 3도가 들어간 Mixtur의 기능과 형태로 Rauschpfeife가 개별적으로 배치된다.

1949년 Kemper사는 Hamburg의 북독일 방송국에 7도(Septime)를 포함한 Rauschpfeife를 제작하였다. 1964년 Klais사는 Schutterwald의 St. Jacobi에 Rauschpfeife 4f ( 2 2/3' +

1 3/5' + 1 1/7' + 8/9')를 Pedal에 제작하였다(5도, 3도, 7도, 2도)

 

 

Rauschquinta, Rauschquinte

 

 

Regal, Régale

  Regal은 16세기 초 부터 입술형파이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짧은 울림통을 가진 떨판형파이프을 가진 이동 가능한 건반악기로 표현되었다. 이 악기는 처음으로 1505년(or 1506년) 1500년대 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Maximilian 1세를 위해 제작되었다. 당시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인 Arnolt Schlick는 이 악기가 낼 수 있는 음 높이에 비해 극도로 작은 파이프를 보고 놀라워했다. 아마 떨판형파이프음색은 1520-30년 네덜란드에서 긴 울림통이 등장하기 전까지 짧은 원통형이나 원추형의 울림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Regal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regale(왕의)“에서 유래하였다. 이 악기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이 왕에게 선물하였다. 1507년 Strassburg 대성당 오르간의 Hauptwerk 개보수를 위한 계약서에 이 음색을 ”königisch Instrument(왕의 악기)“라고 지칭하였다. 이 표현의 라틴어 instrumentum regale를 줄여 단순히 Regal이라고 한 듯하다. 20세기에 들어 이러한 추측에 반하여 Regal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rigole(16세기 프랑스 오르간에서 떨판형파이프의 sharot을 지칭)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505년 Regal이라는 악기가 발명된 후 1507년 Regal은 오르간의 떨판형음색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독일의 여러 지역에서 오르간음색 Regal이 알려진다(1515년 Hagenau St. Georg. Hans Dinkel제작, 1519년 Lüneburg St. Lamberti. Caspar Bubeling제작, 1520년 Weissenburg/Byern. St. Andreas. Kaspar Reutter제작)  1520년대 이후 오르간음색 Regal은 네덜란드로 전파된다. 1530년 Régale라는 음색은 프랑스에서도 만나게 된다(1530년 Toulouse St. Etienne). 1500년대 중반 Regal은 이탈리아에서도 나타난다. 1500년대 후반까지 전 유럽지역에 이 음색이 전파되지만 단지 영국의 오르간에 Regal은 배치되지 않았다.

 

  악기로서 Regal은 적어도 1600년대 매우 짧은 길이의 사각모양의 울림통을 가진 구조로 발전하였다. 울림통이 없는 구조를 가진 Regal로도 발전한다. 이러한 구조의 Regal파이프로 된 오르간의 Regal은 넓은 공간에서 소리가 너무 작기 때문에 깔대기모양의 울림통이 장착되기도 하였다. 깔대기모양의 울림통을 가진 Regal외에 16-17세기에 이르러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음역 및 소리색깔을 가진 Regal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Regal들은 Apfelregal, Bärpfeife, Cornet Regal, Dulcianregal, Gedackt Regal, Geigenregal, Harfenregal, Jungfernregal, Lieblich Regal, Kleinregal, Krummhornregal, , Mittelregal, Rankette, Sordun, Schalmeiregal, Trichterregal, Vox humana등으로 표기하였다.

  Regal이라는 이름은 1650년 이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낳았지만 독일에서는 18세기 중반까지 사용하였다. Vox humana라는 이름으로 짧은 울림통의 Regal음색을 계속 제작하다 1925년 오르간복고운동 이후 Cembaloregal, Doppelkegelregal, Gemshornregal등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였다. 떨판형 파이프 음색의 금속떨판(리드)은 조율꺽쇠Krücke)의 도움으로 정확히 고정된 조정 가능한 음을 만들 수 있다. 그럼으로 떨판형파이프 음색의 울림통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없앨 수 도 있다. Regale의 형성에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오르간제작에서 언제인가 위의 사실을 이용하려 하였고 울림통이 없는 혹은 짧은 울림통을 가진 떨판형파이프 음색을 만들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공간(장소)과 무게를 절약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떨판형파이프 음색을 이동 가능한 오르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 결과 Regal은 짧은 울림통을 가진 떨판형파이프 음색으로 형성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축은 옳지 않음이 밝혀졌다. 짧은 울림통의 떨판을 가진 Regal은 오히려 전적으로 오르간과의 관계에서 오늘날 오르간의 대용악기로 발전한 Harmonium에 상응하는 스스로의 형성물이다.

 

  옛 Regal의 짧은 울림통의 떨판형파이프는 아마 오르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또한 Regal은 입술형파이프 오르간과 별로 관계가 없는 Hydraulos를 모방한 것 같이 여겨진다. Regale는 가볍게 이동 가능한 제후의 궁전 실내악에 기여하는 여러 떨판(리드)열을 가진 악기로 여러 용도로 쓰였음이 명백하다. 이러한 음색 수의 증가는 8'옆에 4', 16' 등을 배치함으로 이루어 졌고 가능한 한 작은 입술형파이프로 더 많은 파이프열이 요구되었다. 우선적으로 작은 Mixtur, Zimbel등이 첨가되었고 이후 Oktave 2' 혹은 1'또는 막힌식 Blockfloete 4'가 더하여졌다. 소리의 고귀함을 위해 짧고 다양한 울림통의 떨판음색이 더하여 졌다. 이미 1500년 이전에 오르간과 Regal 두 개의 악기가 서로 결합하는 형태가 나타나는데 오르간의 하나의 건반군(RegalWerk)으로서 Regal이 간혹 Rueckpositiv에 혹은 자주 Brustwerk에 배치된다. 이러한 Regalwerk에서 오르간 내의 짧은 울림통의 떨판형음색으로 이동한다.

  그때까지 하나의 악기로 표기되던 Regal이 이제는 오르간 내에서 오르간의 중요한 음색, 즉 짧은 울림통의 떨판형 음색으로 이행하였다. 1600년대 독일에서 Reagl의 제작은 절정을 이룬다. 17세기 중엽에는 Regal의 제작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나 Regal을 완전히 오르간에서 추방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Regal 중 특이한 형태인 Vox humana는 이탈리아의 voci umane와 같이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 하려 하지 않았고 바로크 음악에서 연주하는 인간목소리의 기능을 실행하였다. Vox humana 라는 이름은 초기 바로크에 혼자 생겨난 것이 아니라 Regal의 도입 시기와 시간적으로 가깝게 오르간에 유입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Vox humana는 Regal의 울림통보다 몇 배 길고 외적인 형태는 일반 떨판형파이프의 울림통과 같다. 소리는 좀 더 고귀해 졌고 Regal본래의 소리는 잃어버렸다. 그 결과 당시 음악애호가들이 Regal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양의 괴성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오르간에서 옛 짧은 울림통을 가진 Regal은 Zooglossa (=Tierstimme 동물소리)라고 표기도 했는데 진보된 Regal(Vox humana)은 Antropoglossa (= Menschenstimme, Vox humana)라고 불리기도 했고 일반적인 Regal종류에서 제외되었다. Vox humana의 여러 제작방식에도 불구하고 Regal과 다른 점은 Regal보다 긴 울림통을 가졌다는 것이다. 원통형 Regal엔 Krummhornregal, Dulzianregal, Knopfregal, Rankettregal등이 있고 원추형 Regal엔 Trompetenregal, Schalmeiregal, Doppelkegelregal등이 있다.

             

Ripieno

​1. Prinzipalplenum

  이태리어로 “충분히 채워진”이란 뜻을 가진 Ripieno는 이태리에서 Prinzipalplenum(프린치팔 총주)로 표기한다.

​2.Mixture

  벨기에의 프랑드로(Flame)지역의 오르간제작자 Willem Hermans는 이태리에서 자신의 오르간들의 Mixtur를 Ripieno로 표기하였다. 이 음색은 처음에 이태리의 제작자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음색은 이태리에서 개개의 고음열들을 하나의 음색 Repieno로 모으는 것이 일반적으로 실행되었다.

  독일계 이태리 오르간제작자 Eugen Caspirini는 이태리에서 이 음색을 알게되었고 이태리 Trient의 Santa Mario Maggiore의 오르간에 이용하였다. 독일어권 지역에서 이태리의 영향력 있는 오르간제작자들은 Mixturen을 때때로 Ripieno로 표기하였다. Ripieno는 이태리에서 항상 Quinte(5도)와 Oktave(8도)로만 구성하였다.

 

Rohrflöte(독), Flûte à cheminée, Flûte à biberons(프), Flauto a camino(이), Chimey flute(영)

  파이프몸통을 스트로를 가진 마개로 막은 파이프를 Rohrflöte라고 한다. 이러한 모양의 파이프는 1529년부터 네덜란드에서 Holpijp(Hohlpfeife)라는 이름으로 발견된다. 이후 이러한 제작방식의 음색을 1550년 Bourdon이라는 이름으로 오르간제작자 Lodewijk van Halen은 Hazebrouck의 St. Eligius에 제작하였다. 약 1560년부터 네덜란드 오르간제작자들은 이러한 반막힌식 파이프의 제작방식을 북독일과 중부독일에 전파하였다. 독일에서 처음엔 이 음색을 Hohlpfeife, Tapflöte, Zapfenflöte라 하였다. 1604-05년 Heinrich Compenius에 의하여 Magdeburg Dom의 주 오르간에 Rohrflöte 4‘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Esaias Compenius는 1604-13년 Kroppenstedt의 Martin교회에 Rohrfloeten 4'와 Rohrfloeten Quinta 1 1/2'를 제작하였고 1615년에는 Bückeburg의 개신교회에 Rohrflöiten 8', Klein Rohrfloete 4', Gross Rohrfloete 16'를 계획하였다. 이후 Rohrflöte는 중부와 북독일, 덴마크에 퍼진다. 17세기 중후반부터 남독지역에서도 이 음색을 만나게 된다. Johann Friedrich Schulze의 영향으로 Rohrflöte는 1851년 영국으로도 건너간다. 이러한 제작방법의 음색은 영국에서 이미 Stopped Diapason이라는 이름으로 실현되고 있었지만 대부분 나무로 된 Gedackt에 손잡이 역할을 하는 구멍을 가진 뚜껑으로 막힌 방식이었다.

  금속의 Rohrflöte역시 제작한 듯하다. 약 1860년 이후 미국에서도 독일로부터 이주해온 제작자들에 의해 Rohrflöte가 소개되었다. 프랑스는 네덜란드로부터 16세기 말에 전파된다. 프랑스에서 Rohrflöte는 Flûte à cheminée, Flûte à biberons라 표기하였다. 이태리는 이 음색을 받아들이는데 게을렀다. 18세기에 이르러 소개된다. 스트로를 가진 Gedackt의 발명 이후 Gedackt의 몸통에 변화를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었다. Rohrflöte는 독일에서 넓은 폭의 Gedackt에 속한다(파이프의 폭은 대략 3 - 4 HT). 반면 스트로의 폭은 좁다. 보통 파이프 폭의 1/4(간혹 1/3 , 1/5) 이러한 제작방법으로 독일에서 자주 제작되었다. 그러나 로만틱 소리의 취향에 맞지 않아(기본음 빈약함) 1700년대에는 이 음색이 퇴보하였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제작되어오다 현재에는 빈번히 제작하는 음색이다. Hohlflöte( 주로 저 음역 16‘, 4’) 혹은 Bauernflöte(2‘, 1’)라고도 한다. 혹은 Gedacktflöte, Flötengedack, Zapfenflöte, Kanalflöte, Flauto a camino.

 

 

 

Rohrgedackt

  Rohrgedackt라는 이름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1753년 Christian Ludwig König가 Düsseldorf의 St. Maximilian의 오르간을 위한 계약서에 Rohrgedackt 8'로 나타난다. 이 이름은 18세기와 19세기 초까지 독일의 제작자들에 의해 결코 사용되지 않은 듯싶다. 1910년 Walcker에 의해 새롭게 나타난다. 1920년대에 이르러 이 음색은 빈번히 제작되었다. 1930년에 Mahrenholz에 의해 Rohrgedackt는 Rohrflöte와 같이 원통형 스트로를 가진 반막힌식 입술형파이프음색으로 정의 되었다. 그렇지만 길고 가는 스트로와는 구별되었다. 이러한 길고 가는 스트로를 가진 Rohrgedackt는 Gedackt와 소리의 차이가 거의 없다. Rohrgedackt는 반 막힌식 Gedackt의 프랑스식 제작방식 이름으로 프랑스의 오르간제작자 들은 Gedackt의 Flöte같은 소리를 내는 구조와 좁은 폭의 배음이 풍부한 독일의 바로크 Gedackt(Quintaden과 같은)를 흉내 내었다. 사실 프랑스의 Rohrgedackt는 약간 밝은 Gedacktflöte와 거의 차이가 없다. Bedos는 스트로가 없는 것을 Gedacktflöte로, 스트로가 있는 것을 Rohrgedackt로 명명하였다. 스트로의 길이는 모든 경우 독일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길다. 프랑스에서 이 음색은 처음에 Flöte, Bourdon, Gedackt으로 부르다 후에 Rohrflöte, Rohrgedackt로, 그 밖에 flūte allermande, fiffre allermande로 불렀다.

 

Rohrquintaden(a)

  Christhard Mahrenholz는 1930년 짧고 가는 스트로를 가진 반막힌식 파이프음색을 Rohrquintaden(a)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짧고 가는 스트로를 통해 5도음이 강조되고 밝은 Quintadena소리가 추가적으로 분명히 들리게 된다. Rohrquintaden(a)은 Quintaden 이나 스트로를 가진 Gedacktpommer와 관련된다. 매우 짧고 좁은 폭을 가진 스트로와 충분한 바람은 이 음색을 원래의 Quintaden과 구별되지 않은 소리를 만든다. 그러나 저음역은 부조화된 배음으로 약간 거친 소리를 낸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 바로크시대의 오르간제작에서는 특히 고 음역에만 이 음색을 배치하였다. 이 음색을 둥근 Gedacktpommer와 같이 울려야 한다면 파이프 폭을 넓게 취하지 않고 바람의 공급을 줄여 Gedacktpommer와 같이 Duodezime의 소리를 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트로로 인한 부속 음들은 남아있어 매력적인 소리를 만든다. 음색이름 Rohrquintaden은 많은 경우 Quintaden과 Gedackt-pommer와 같이 불려진다. 옛 오르간제작에서 이 음색은 Rohrschelle, 오늘날 약하게 보이싱 한 후 Nachthorn으로, 영국에서는 Clarionet Flute 로 불린다.

 

Rohrpfeife

  Christhard Mahrenholz는 1930년 넓고 긴 스트로를 가지며 몸통이 좁은 반막힌식 파이프음색을 Rohrpfeife라 하였다. 이러한 모양의 파이프는 열린식 입술형파이프 같이 작용하고 좁은 폭으로 인해 날카롭고 Prinzipal같은 소리를 낸다. 1923-33년 Albert Moser는 Einsiedeln의 수도원에 이러한 Rohrpfeife 4'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 넓고 긴 스트로를 가진 좁은 폭의 반 막힌식 음색으로 16 - 17세기 프랑스에서 만날 수 있으며 Flūte allemande라고도 한다.

 

 

Rohrschalmei, Rohrschalmey

떨판형파이프 음색 Rohrschalmei는 독일의 Baden-Würtemmberg주 Backnang의 오르가니스트이자 교회음악가인 Selz가 발명하였다. 이 음색구조의 권리는 1932년부터 이 음색을 제공한 오르간부품제작사 Laukhuff사에 있다. 이 음색이 발명된 후 1934년부터 오르간제작사 Link, Weigle, Walcker 그리고 Steinmeyer등 여러 제작사에서 자신의 오르간에 이 음색을 배치하였다. 이 음색은 1950년대 독일에서 매우 선호하는 음색이 되었다. 이 음색은 Manual음색으로 8’음역(매우 드물게 4‘음역)에 배치된다. 울림통은 원통형의 스트로우 형태로 윗부분의 스트로우는 아랫부분 스트로의 약 3배의 지름을 갖는다.

 

 

Salicet, Salizet

  오르간음색으로 Salicet은 17세기 전반기에 나타난 듯하다. 이 이름 Salicet는 처음부터 1600년 폴란드에서 Salicinal의 이름하에 생겨난 음색과 같은 음색으로 표기하였다. 음색이름 Salicional 혹은 Salicinal이 18세기 이후 쉴레진(Schlesien)지역에 들어온 후 이 지역에서는 Salicet, Salicinal 혹은 Salicional 중 선호하는 이름을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다만 영국과 북아메리카에서는 1870년 이후 Salicet라는 이름이 들어온 이후 Salicional과 Salicet사이의 의미있는 차이가 있었다. Salicet는 Salicional의 작은 형태로 여겨졌고 4‘음역에만 사용하였다. Dulciana 8’의 4‘음역을 Dulcet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Salicet이라는 이름은 이태리어 salice(목초치, 목장)에서 유래하였다.

 

 

Salicional, Salcinal, Sacional

  Salicional음색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05년 Wawrzyniez Chwaliszewski와 맺은 Bromberg (Bydgoszcz)의 Bernhardiner교회를 위한 오르간계약서이다. Krakau의 St. Marien의 주 오르간에 Salcinal 8'(?)가 있었다. 또한 1615-30년에 Hans Hummel이 Leutschau의 St. Jacobi의 오르간에 Salicinal 8'가 있었는데 1615년의 계약서에서는 Salicinal 8‘대신 Schweytzerpfeyffen 8'라고 명기되어 있었다. Salcinal이라는 이름은 아마 라틴어 “salicinalis(=수양버들의가지)”에서 유래한 듯하다. 수양버들로 만든 매우 좁은 폭의 피리로 부터 오르간음색의 스케일(폭)과 이름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미 17세기와 더불어 Böhmen(체코의 주 이름)지역에는 후에 Salcional 혹은 Salicional이라고 명명된 음색이 나타난다. Salicinal이나 Salicional은 처음부터 8‘음역에 주로 배치하여 수양버들피리의 고음을 모방하지 않았다.

  17세기 초 이미 폴란드로 부터 보헤미안(Böhmen)지방으로 이 음색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쉴레진(Schlesien, Oder강 유역, 2차 대전 후 폴란드관할)에서는 Salicet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약 1670년대 이후 이 음색은 바이에른을 비롯한 중부독일에 전파된다. 스웨덴에서는 17세기 말에, 오스트리아는 18세기 중반에 이 음색이 알려졌다. 북 독일에서 1682-1687년 Arp Schnitger는 Hamburg St. Nikolai오르간에 Salcional 8‘를, 1690-95년 Magdeburg의 St. Johaniss에 Salicinal 8'를 제작하였다.

  Salicional은 다양한 제작형태와 보이싱방법으로 제작하였다. 매우 좁은 원통형파이프의 Salicional이 원래의 형태이다. 보통 표준 프린지팔 스케일보다 15반음 좁게(- 15 HT) 스케일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의 오르간복고운동으로 Christhard Mahrenholz(20세기 독일의 성직자이자 음악이론가)는 Salicional의 폭을 5-6HT좁게 스케일하고 적은 바람과 수염이 없이 보이싱할 것을 권고하였다. 독일의 오르간부품제작사인 Laukhuff사는 넓은 폭의 Salicional(약 - 9HT, C= 95-115 mm)과 좁은 폭의 Salicional( - 15 HT, C= 78-80 mm)을 제작하여 판매한다. Salizional의 소리색깔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힘차고 강했지만 후에 Gamba의 강함과 비교되기 위해 자연적으로 약해졌다. 처음엔 8‘, 4’, 2‘ 때론 Pedal에 32’음역에도 배치했지만 에코형태라는 특별한 임무로 주로 8‘음역에 배치된다. Salitional, Salacin, Salicinal, Sacional, Solicional, Sallicionall, Salicinale Solacinal, Salcional, Salocinal등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반면 고음역(주로 4‘음역)을 위한 이름은 Salizet(Salicet, Salicett, Solicet)등으로 표시한다.

 

 

Sachalmei, Schalmey

  1. 떨판형파이프로 깔대기 모양의 열린 울림통의 음색

음색이름 Schalmei는 16세기 초에 처음으로 나타난다(1507년 Strassburg Münster의 Hauptorgel) 이어 네덜란드에서 이 Manual음색을 매우 빈번히 제작하였다. 울림통의 길이는 1520-30년대 Posaune와 Trompete같이 보통의 길이를 갖는 구조로 발전한다. 전에는 짧은 울림통으로 제작하였다.

약 1550년부터 네덜란드의 깔대기모양의 울림통을 갖는 Schalmei를 북독일에 전해주었다. 오늘날 벨기에의 오르간제작자들은 북프랑스에 Schalmei 4’를 전해주었다. 프랑스에서 이 음색을 Clairon 4’로 표기하였다.

이미 1650년대에 네덜란드에서 Schalmei 4’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북독일에서 이 음색은 18세기 말경 Pedal의 4’음역의 떨판형음색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1950년 이후 Schalmei는 좁은 폭의 한 부분으로 된 깔대기모양의 울림통을 갖는 음색으로 북독일 바로크오르간의 전형으로 다시 선호하게 된다. 주로 Pedal에 4‘음역으로 배치하지만 소형오르간에서는 Trompete 8’의 대용음색으로 Manual에 Schalmei 8’가 배치되기도 한다. 더욱이 1960-70년대에 소형오르간이나 대형오르간의 추가 Manual에 때때로 Schalmei- trompete라는 이름으로 좁은 폭의 짧은 울림통을 갖는 구조로 Bass음역에 배치된다. (Schalmeitrompete 16’ in Wurmannsquick의 Max Sachs오르간, Schalmeitrompete 8’ in Wuppertal-Elberfeld의 St. Laurentius오르간)

 

2. 떨판형파이프로 짧은 깔대기 모양의 열린 울림통의 음색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네덜란드에서 Schalmeien은 약 1530년 전에 짧은 울림통을 갖고 있었다. 아마 이 언급은 16세기 초 네덜란드외 지역의 얼마 안 되는 Schalmei음색에 유효한 듯하다. 1570년부터 중부와 북독일에서 Pedal음색 Schalmei 4’를 빈번히 만나게 된다. 이 Schalmei음색은 짧은 울림통의 음색이었다. Michael Hirschfelder는 1595년 Bleslau의 St. Maria Magdalena오르간에 SchalmeyerBass/ Geigenart Chormass를 계획하였다. 여기서 Chormass는 8‘음역을 표현하고 Geigenart는 Geigenregal과 같이 짧은 울림통을 가리킨다.

  MichaelPraetorius는 1619년 Schalmei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Schmei 8’의ㅡ파이프(몸통)는 경미한 깔대기 모양과 좁은 폭에 뚜껑을 씌운형태로 몸통의 길이는 약 3‘ 이다” 즉 몸통의 길이는 반이라는 뜻이다. Schalmei 8’는 그의 시대에 Manual에 간혹 배치되었다. 17세기에 Schalmei는 네덜란드와 Westfallen지역에 Manual음색으로 8‘음역에 자주 배치하였다. 17세기 북독일에서 짧은 울림통의 Schalmei를 Schalmeiregal로 표기하였다.

  음색역사에서 Schalmei는 매우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되어왔다. 주로 떨판형파이프의 Schalmei로 두 부분으로 구성된 짧은 깔대기 모양의 닫힌 울림통의 Schalmei, 두 부분으로 구성된 보통길이의 열린식 몸통의 Schalmei, 두 부분으로 구성된 깔대기모양의 보통길이의 막힌식 Schalmei, 입술형파이프 Schalmei등 다양한 제작방식을 갖는 음색이다.

 

Scharf, Scharff, Scharffes

​1. Hintersatz

  1487년 Clais Gerytszoen은 Gravenhage의 Hofkapelle 오르간을 위해 Doef(Prinzipal)과 Scarp(Scharf)음색으로 세 가지 다른 소리를 울리는 오르간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Scarp라는 단어는 기본음열의 차단으로 울리는 Prinzipalplenum의 소리를 표기하는 네덜란드어이다. 즉 이 음색은 Prinzipal의 기본음 열이 빠진 Hintersatz를 가리킨다.

 

2. 고음으로 울리는 3도가 빠진 Mixtur

  Johann Kavelens와 다른 네덜란드의 오르간제작자들은 16세기 초 지금까지 Positie 혹은 Scherp라 불리던 Hintersatz를 두 개의 음색으로 분리하는 일을 이행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분리한 Mixtur를 Johann Kavelens는 이미 1511년 Alkmaar의 St. Laurens의 소형오르간에 실현하였다. 분리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Scharf는 저음역의 고음열을 받고 Mixtur는 낮은 나머지 열을 받았다. 그 결과 Alkmaar의 Kavelens의 오르간의 Scharf는 저음역엔 3열, 고음역엔 7열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Scharf는 부가적인 Manual에 유일한 Klangkrone (Mixtur)로 배치되었다.

 

  1550년부터 네덜란드의 오르간제작자는 이 음색을 Westfallen과 북독일에 전파하였다. 16세기 말 지역의 오르간제작자 Hans Scherer는 Scharf의 표기를 받아들인다. 물론 북독일로부터 받아들인 Scharf의 열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였다. 1585년 Hildesheim의 St. Georg에 그가 제작한 오르간에 Scharf 3f가 배치되었다. 그는 이후 몇몇의 자신의 오르간에 Scharf 3f 혹은 4f를 제작하였다. 17세기 후반 오르간제작자 Friedrich Stellwagen은 Stralsund St. Marien에 1680 Schar 4-6f(Mixtur 6-10f 옆에), 6-10f (MIxtur없는 건반대에)를 제작하였다. Scharf의 구성은 Terzchöre(3도 열들)가 없는 Oktav- 와 Quintchöre(5도 열들)로 이루어진다.

 

3. 3도 Mixtur

  Brandenburger의 오르간제작자 Joachim Wagner는 1720년부터 항상 3도(Terz)가 포함된 5-6열의 Scharf를 제작하였다. 그는 Scharf를 매우 좁은 폭으로 제작하였다, Wagner의 3도가 포함된 Scharf는 아마 중부독일과 Böhmen으로부터 배운 듯하다. 그의 Scharf의 제작방법을 이후 Brandenburger의 오르간제작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Scharfmixtur

 

Schnabelflöte

 

Schreipfeife

 

 

Schwebung

​1. Tremulant

  18세기에 중부독일에서 Schwebung은 부드럽고 느린 Tremulant로 이해하였다. Schweung은 Gottfried Silbermann에 의해 도입된 듯하다. Schwebung의 초기의 예는 1710-14년 Freiberger Dom의 Silbermann 오르간 Oberwerk에 이 음색을 갖고 있다. Schwebung은 최소한 17세기 전반 프랑스에서 Trembulant doux로서 제작된 장치와 관련이 있다. 즉 바람운송관에 바람의 공급을 반복적으로 개폐하는 여닫이가 있다. Gottfried Silbermann은 의심할 여지없이 프랑스의 오르간제작기술을 배운 엘자스(Elsass)지역의 그의 형 Andreas Silbermann으로부터 배웠다. Schwebung은 Tremulant와 같이 19세기 오르간에서 선호되지 않았지만 단지 Vox humana로의 부수적인 장치로 계속 제작되었다.

 

​2. 맥놀이 음색

  1920년대 맥놀이음색을 위한 전통적인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고 특별히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Vox coelestis 혹은 Vox angelica와 같은 이름은 거절되고 논란거리인 로만틱의 감각에 너무 좁게 결합된 것 같이 여겨진다. 이러한 결과로 이 이름은 사실적인 표현인 Schwebung에 의해 점차 대체되었다.

  1930년 Christhard  Mahrenholz는 이 음색이름의 차이를 위해 Flötenschwebung과 Geigen -schwebung의 표기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표기는 매우 드물게 사용되어졌고 이후 Schwebung이라는 표기로 남았다. 대부분의 경우 수 십 년 전의 Schwebung과 비슷한 Voix céleste(스트링소리가 많게 보이싱한 경우) 혹은 Undamaris(스트링소리가 적게 보이싱한 경우)로 표기하였다. 물론 뚜렷하게 진동하고 강한 스트링소리의 음색은 오르간복고운동으로 배제되었다. 대부분 Schwebung음색의 스케일이나 제작방식은 함께 울려야하는 Salicional 8’ 혹은 Viola di Gamba 8’과 같은 스트링음색으로만든다. Schwebung은 보통 8‘음역에 c건반부터 제작한다.

 

 

Schwegel, Schweigel, Schwiegel, Schwiegelflöte

1. 좁은 폭의 Prinzipal 음색

  Michael Praetorius(16세기 말- 17세기 초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교회음악감독)은 Schwegel을 20-30 Zoll(독일의 재단한 나무를 위한 길이단위로 1 Zoll = 2.54 cam)  길이와 좁은 폭의 Blockföte로 단지 3개의 구멍을 갖고 2옥타브이상의 음역을 갖는 악기로 기술하였다. 오르간음색으로 Schwegel은 이미 16세기 초에 만나게 된다. 이 음색은 Prinzipal 파이프를 원래의 악기같이 매우 좁은 폭의 몸통으로 만들고 낮은 입술의 높이로 약간 늦게 발성한다. 대부분 Manual에 2‘음역에 배치한다.

 

2. 넓은 폭의 Prinzipal 음색

  대략 1580년 이후 중부독일에 Schwigel이라는 이름의 음색이 입증된다(1582. Stadtkirche Könnern/Saale 오르간. Schwigel 4’). 역시 중부독일에서 Schwegel과 Prizipal사이의 좁은 폭의 동종의 음색이 생겨났다. Heinrich Compenius der Ältere(16세기 중반-17세기 초 독일의 오르간제작자, 오르가니스트, 작곡가)는 1588-90년 Fritzlar Dom오르간에 Prinzipal Schwiegel 4’를 제작하였다. 이 음색은 좁은 폭이 아니라 넓은 폭의 Prinzipal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Praetorius는 Schwiegel을 넓은 폭의 열린식 Hohlflöte로 여겼다. Praetorius에 의하여 중부독일에서 Schwiegel은 8‘나 4’음역에 배치한다. 오늘날은 단지 4‘음역에 배치하지만 Praetorius가 언급하지 않은 1’음역의 Schwiegel도 나타난다.

약 1650년 이후 넓은 폭의 Schwiegel은 단지 1‘와 2’음역에서만 발견되었고 4‘나 8’음역은 더 이상 실현되지 않는 듯 여겨진다. 1700년대 까지 이 음색은 중부독일에서 간혹 배치되지만 18세기 후반부터 점차 잊혀 진다.

 

3. 고깔형 파이프음색

  Praetorius는 Schwiegel을 Gemshorn과 같이 고깔형 모양에 이 음색보다 약간 넓은 폭의 음색으로 간주하였다. 파이프의 입은 좁고 소리는 Spillflöte보다 고요하다. 누가 이 Schwiegel을 이렇게 실현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첫 번째로 고려되는 자는 Esais Compenius이다. 그는 Praetorius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었고 빈번히 평행의 파이프몸통을 고깔형 모양으로 바꾸어 제작했다.

 

 

Schweizerpfeife, Schweizerflöte

1. 좁은 폭의 과취하지 않는 파이프음색

  Feldpfeife라고 불리는 목관취주악기인 Schweizerpfeife는 군대에서 북과 함께 울리는 가로피리이다. Schweizerpfeife는 보통의 가로피리보다 작고 자신만의 운지법을 가지고 있다. 악기 이름은 스위스용병(Schweizer Söldner)에서 유래하였다. 오르간음색으로 Schweizer flothen은 1505년 처음으로 Dresden Dreikönigkirche(세 왕의 교회)를 위한 오르간제작계약서에 나타난다.

  1580년에서 대략 1700년 사이에 주로 중부독일에서 이 음색이 상대적으로 빈번히 배치되었고 Westfallen과 북독일 해안지방에는 드물게 배치되었다. 남독에서 이 음색은 공공연히 사용하지 않았다. 이 음색의 음역은 8‘ 혹은 4’로 Manual에 배치하였고 Pedal에는 Schweizerbass 로 2‘와 1’음역으로 배치하였다. 1720년경 이 음색은 중부독일과 그 밖의 지역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Schweizerpfeife는 프린치팔과 같이 열린식 원통형파이프를 매우 좁게 스케일하여 사각입술(Kastenbärten)을 장착하여 스트링음색과 같은 소리를 낸다. Johann Scheibe는 1711-17년 Leipzig의 Paulinerkirche에 Schweizerpfeife 1’를 제작하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 음색의 파이프는 매우 좁은 폭의 열린식 파이프로 날카롭게 울린다“ Schweizerpfeife는 스트링음색의 기원인 듯 아마도 이 음색에서 1600년대에 Salicional, Salicet혹은 Viola di Gamba로 개명이 된 것 같다. 1830년대 Ernst Siegfried와 Johann Michael Hesse는 Erfurt지역에 새롭게 Schweizerflöte 8’를 제작하였다. 이 이름은 곧 다른 오르간제작자에 의해 중부독일에서 만나게된다. 1860년대 이후 독일 해안지역에서도 간혹 만나게 된다. 1925년 이후 Chrishard Mahrenholz와 Henny Jahnn의 영향으로 Schweizerflöte와 Schweizerpfeife는 과취하는(over- blowing)음색으로 관련되었다.

 

2. 과취하는 막힌식 파이프음색

  Praetorius는 Schweizerpfeife의 두 번째 제작방식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의 언급에 의하면 Schweizerpfeife의 파이프는 분명히 과취하는 막힌식 파이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그의 언급에 의하면 열린식파이프와 같은 길이에서 같은 음 높이를 내어야 했는데 이는 파이프가 고깔형에 해당한다. Praetorius는 Blockflöte에 대하여 고깔형의 막힌식 파이프로 과취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어느 오르간제작자가 Schweizerpfeife를 이러한 제작방식으로 제작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어찌되었던 이 음색의 제작방식은 전파되지 않은 듯하다.

 

3. 과취하는 열린식 파이프음색

  Hans Henny Jahnn(19세기 말 독일의 작가이자 정치기자이며 음악적인 영역에서는 오르간제작자이며 음악서적 출판자)는 1925년 Schweizerpfeife, Schweizerflöte는 과취하는 주석파이프음색으로 기록하였다.

1925년부터 과취하는 Schweizerpfeife가 생겨났다(Furtwängler & Hammer 1925 in Göttingen, St. Marien. Schweizerpfeife 2’, Johannes Klais 1927 in Blindenanstahlt Düren. 2’)

 이미 1930년대부터 과취하는 Schweizerpfeife는 4‘에서 1’음역(매우 드물게 8‘음역)에서 빈번히 배치되었다. 1980-1990년대 이후 이 음색은 프랑스의 Flûte harmonique, Flûte octaviante 그리고 Octavin과 독일의 Flaute travers에 의해 점차 사라지게 된다.

 

Septime

  8‘의 C음 대하여 7번째 부분음(6번째 배음) 즉 C음에 대하여 단7도(B♭)음을 내는 음색으로 1737-1750년 독일의 Joseph Gabler 가 Weingarten 수도원교회의 주오르간 페달에 배치한 49열 Mixtur(La force, Die Kraft)에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 Mixtur는 C건반만 울림) 이후 몇몇 제작자들에 의해 Manual에 2 2/7’, Pedal에 4 4/7’의 음역으로 제작하고 1 1/7‘의 Septime는 1856년 처음으로 Dresden에 제작하였다. Aristide Cavaillé-Coll는 아마 독일의 이 음색의 발전에 대한 정보 없이 파리의 노틀담성당에 Septime 1 1/7’, 2 2/7, 4 4/7’를 배치하였다. 독일에서 이 음색은 처음에 막힌식 혹은 반 막힌식으로 제작하였고 Cavaillé-Coll은 과취음색으로 만들었지만 20세기 들어 이 음색은 보통 중간 폭의 원통형 열린식 파이프로 제작하여 부드럽고 Flute음색으로 보이싱한다.

 

 

Seraphon

 

 

Sesquialtera, Sesquialter, Sextquialter

  Sesquialter라는 음색이름의 알려진 옛 기록은 1590년 Trier Dom 오르간을 위해 Floris Hocque와 맺은 계약서에 나타난다. 1615년 Floris Hocque는 다시 Köln의 St. Maria를 위한 대형오르간에 Sesquialtera를 배치하여야 했다. 이 이름의 음색은 네덜란드, Westfallen 그리고 북독일과 중부독일의 다른 제작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1626-27년 Josias Ibach는 Leipzig의 Paulinerkirche 오르간에 Sesquialtera 2’(아마 2f를 잘못 표기한 듯)를 1632년 Magdeburger Dom의 오르간에 Sesquialtera 2f를 제작하였다. 프랑스 역시 이 음색을 받아들인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로부터 Sesquialtera는 1660년 이후 영국에서 받아들인다. 아메리카는 18세기에 들어 영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오르간을 통해 이 음색이 알려진다.

 

 1. 2열의 합성음색 Sesquialtera

  이 음색의 이름과 같이 Sesquialtera는 2열(매우 드물게 3열)의 합성음색이다. 초기의 2열로 구성된 Sesquialtera의 기록은 C건반에서는 1 1/3‘ + 4/5’로 c건반부터는 2 2/3‘ + 1 3/5’열로 구성되어있다. Sesquialtera(Sesquialter, Sexquialtera), Sesqui Altera, Sesque Alte 라는 이름은 라틴어로서 비율(관계) 3 : 2 를 뜻한다. Quinte 2 2/3' 와 Terz 1 3/5'는 3 : 2가 아니라 5 : 3의 주파수(진동수)비에 해당한다. 아마 이 비율은 음역의 숫자를 반올림하여 나온 듯하다.2 2/3‘ → 3’,  1 3/5‘ → 2’.

전형적인 Sesquialtera의 구성음 2 2/3‘ + 1 3/5’은 입술형파이프음색의 Cornet 3f( 2 2/3’ + 2’ + 1 3/5’)과 비슷하다. 이는 오르간제작자 Hocquet가족이 Sesquialtera를 1540년부터 나타나는 Cornet 혹은 Nachthorn로부터 2열로 축소하고 저음역까지 구성하여 발전시켰음을 추측하게 한다. 실제로 Sesquialtera는 17세기 초 입술형파이프 여러 열로 구성된 Cornet 혹은 Nachthorn과 동일 시 하였다.

Hans Henrich Bader는 164년 Wesel의 Willibrodi-Dom오르간에 5 1/2‘열이 추가된 Grosse Sesquialtera 3f를 제작하였다. 이 Sesquialtera는 바로크시대 드물게 5 1/3’ + 3 1/5‘구성으로 제작되었다. 더욱이 2/3’+ 2/5’열의 Sesquialtera도 만들어진다. 때로는 1 3/5‘ + 1’열로 구성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성은 2 2/3‘ + 1 3/5’ + 1‘의 3열 Sesquialtera에서 발전된 듯하다. 1800년 이후 반복구성 없는 2 2/3’ + 1 3/5’열의 Sesquialtera가 독일에서 표준 형태로 되었다. 원래 Sesquialtera는 2열의 Manual음색이었지만 바로크시대에는 간혹 Pedal에도 배치하였다. 이 경우 구성은 한 옥타브 낮은 5 1/3‘ + 3 1/5’로 구성하였다.

 

2. 단열의 Sesquialtera

  17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이미 Sesquialtera를 3도열로 축소하고 함께 구성했던 5도는 분리해서 배치하였다. 이러한 단열의 Sesquialtera는 Gaspard & André Eustache에 의해 1643년 Nimes의 Kathedrale에 배치하였다. 독일의 Gottfried Silbermann도 1723년 Reichenbach의 Stadtkirche오르간에 3도열의 4/5’를 Sesquialtera라는 이름으로 배치하고 c1부터는 1 3/5‘로 반복구성 하였다. 그는 그 음색 옆에 Quinte 1 1/3’를 함께 배치하였다.

 

3. 3열의 합성음색 Sesquialtera

  Westfallen에는 오래전부터 Sesquialtera의 3열 구성이 있었다. Daniel Bader는 1610년 Münster의 Dom오르간에 Sesquialtera 3f를 계획하였다. 17세기 후반부터 Westfallen의 오르간제작에서는 3열의 Sesquialtera가 일반적이 되었고 1700년대 이후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도 3열의 이 음색을 만나게 되었다. 이 3번째 열은 옥타브열로 5도와 3도열의 중간에 추가하거나(Sesquialtera 3f 2 2/3’ + 2’ + 1 3/5’) 5도열 아래에 추가하였다(2’ + 1 1/3’ + 4/5’ 혹은 4‘ + 2 2/3’ + 1 3/5‘)

 

4. 3-5열의 3도가 포함된 Mixtur

  영국에서 1660년 이후 대륙의 Sesquialtera와 심하게 벗어나는 새로운 Sesquialtera 음색이 발전하였다. 그럼으로 영국에서 Sesquialtera음색은 3도(Terz)열을 포함하는 3-5열의 Mixtur를 표기하였다. Sesquialtera 3f의 빈번한 구성은 1 3/5‘ + 1 1/3’ + 1‘로 2-3번 반복구성을 하였다. 4열의 Sesquialtera의 경우는 Bass에 주로 2열로 시작하여(간혹 2/3’열 추가) 4’ +

2 2/3’ + 2’ + 1 3/5’로 끝난다. 만약 같은 건반에 Terz 1 3/5‘가 배치되어 있다면 Sesquialtera에서 1 3/5’열은 생략하였다. 남독에서도 18세기 4열 혹은 그 이상의 열을 추가하여 Sesquialtera를 간혹 배치하였다.

 

5. 7도 및 9도의 Sesquialtera

  1950년 이후 독일에서는 일반적인 Sesquialtera의 구성인 2 2/3’ + 1 3/5’에 빈번히 7도와 9도를 추가하여 확장하였다. 이러한 음색을 Septimensesquialtera 혹은 Nonensesquialtera로 표기하였다. Walter Super는 1955년 Septimensesquialtera의 구성을 2 2/3’ + 1 3/5’ + 1 1/7‘로 제안하였다. 때로는 5 1/3’ + 3 1/5‘ + 2 2/7’구성의 Septimensesquialtera를 Pedal에 배치하기도 하였다.

Nonensesquialtera는 1950년 Mainz의 St. Joseph 오르간에 Kemper에 의해 1961년 Heilbronn의 St. Peter & Paul 오르간에 처음으로 배치하였다(2 2/3‘ + 1 3/5’ + 8/9‘)

 

 

Sexta, Sexte

1. Terz 1 3/5’

  Sexta라는 음색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난 때는 1680년대 이다. Matthias Schurich는 1679-82년 Kamenz의 St. Marien 교회의 오르간에 Principal 2’대신 Sexta 2’를 배치하였다. Sexta음색은 18세기 주로 중부독일과 북독일에 사용되었고 남독과 Habsburg지역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18세기 후반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Sexta는 Sequialtera 2f (2 2/3’ + 1 3/5’)를 나누어 두 개의 음색으로 만들었다. 그럼으로 이 음색은 항상 Quinte와 함께 배치하여 Sexte(6도)를 형성하였다(2 2/3‘에서 1 3/5’사이는 6도라는 의미에서 6도를 의미하는 Sexta라는 음색이름이 붙음) Sexta는 기본음에 대하여 3도로 울려 Terz 1 3/5’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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